삼일절이 우리 것인 이유 고종은 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의 국명을 선택했다. 그리고 환구단을 세웠다. 상제님을 경배하는 제천문화를 되찾은 것이다.대한제국은 ‘상제님을 모시는 나라’에서 출발했다. '대한독립만세’는 상제님을 모시는 나라의 부활인 것이다. 만세운동이 있기 전 제주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법정사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바로 보천교(현 증산도)신자가 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무기를 가지고서 일본과 맞섰다. 이것은 자주의식의 표현이다. 후천세계를 열기 위한 개벽행위인 것이다. 상제님은 개벽장이시다. 기존의 질서에서 판이 뒤집혀 새로운 질서가 열리는 것을 개벽이라고 한다면 그와 관련된 일체의 모든행위에서 주재자가 되시는 것이다. 대한독립만세는 동학을 숭상했던 자들에게는 다시 개벽된 세..
"병자호란을 끝낸 건 천연두였다" 2019.02.21. https://news.v.daum.net/v/20190221111150134 그런데 당시 기록을 살피면 흥미로운 지점을 만나게 된다. 전쟁은 1월 17일 갑자기 협상 국면으로 바뀐다. 우리는 청이 이길 게 확실한 전쟁에서 왜 협상에 나섰던 건지 물어야 한다. 혹시 비축해둔 식량이 없어서였을까. 그건 아니었을 게다. 가을걷이가 끝난 조선인의 곳간을 약탈하는 것만으로도 청은 부족한 식량을 너끈하게 충당할 수 있었을 테니까.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청이 태도를 바꾼 건 천연두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엔 천연두가 유행했다. 조선에 주둔하던 청군 진영에서도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다. 홍타이지는 천연두에 극도..
(특집)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에 전국의 역사광복군 최대 집결하다. 사)대한사랑이 주최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기념 역사광복전진대회에 전국 역사광복군이 모여들었다. 2016년 국회에서 미래로가는 바른 역사협의회 결성식때의 결집한 최만원 인원 시작으로 그동안 함께 진행된 역사광복활동의 결과로 2천 여명이 집결한 말그대로 백범 김구선생 기념관 행사장 내부가 발디딜 여지가 없을 정도 민족사학 최대 축제장이 되었다. 주체측이 준비한 행사물품은 얼마가지 못해 동이 나버렸을 정도. ♥아래 주소 톡 건들여서 행사내용 보세요? ♥https://band.us/band/61962591/post/9606 ♥https://band.us/band/61962591/post/9601 ♥STB상생방송에서 근무하는 ..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큰 눈을 내리거든 천상에 대공사(大公事)가 있는 줄로 알라." 하시니라 https://news.v.daum.net/v/20190218162532068?rcmd=rn&f=m 대한사랑, ‘역사광복군 http://m.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404662 왜곡되고 잃어버린 한민족의 뿌리역사와 국통맥을 바로 세우고 사라진 우리의 원형문화정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 온 사단법인 ‘대한사랑大韓史郞’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2월 19일 오후 3시 서울 효창동의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를 개최한다. ‘지금은 우리가 힘을 모아 역사광복을 이뤄야 할 때’라는 표어를 내걸고 개최되는..
EBS 다큐시선 3부작 '우리 곁의 친일잔재'를 다시 보면서 핵심을 파악해봤다. 다큐시선은 교육, 미술, 음악계에 남아있는 친일의 흔적들이 무엇이고, 누가 친일이었고, 왜 그것이 문제였는지 하나하나 파헤친다. 만원권 지폐에서 어릴적 학교에서 배웠던 동요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역사속에서 옷깃을 여미는 애국지사의 동상앞에서 그리고 가슴 뜨겁게 부르는 애국가에서.. 친일은 살아있다. 일왕을 찬양하고 일본군을 사모하며, 그들을 위해 침략전쟁에 나가서 싸우다 기꺼이 죽겠다는 맹세와 우리의 선조들은 어리석고 무능해서,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되어서야 비로소 문명화되었다는 거짓 역사가 황국신민이 되는 것이 조선에 태어난 목적이자,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목놓아 찬양했던 세치 혀가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숨을 헐떡거..
일본 헌병憲兵과 순사巡査 사실은 순간순간 놓치기 쉽다. 기억으로 붙잡아도 망각의 강으로 스러져간다. 사진은 사실을 붙잡아 두는 훌륭한 도구다. 포착된 사진들은 찰나를 역사로 만들어 준다. 사진 속에서 진실을 찾아보자! 하루는 일본 헌병들이 ‘요술쟁이를 잡는다.’ 하여 약방을 포위하고 숨어서 상제님을 기다리고 있더니 상제님께서 돌아오시어 약방 안으로 들어가시매 포위망을 좁혀 방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뛰어드니라. 허나 분명히 방으로 들어가신 상제님이 어디에도 계시지 않거늘 사방을 뒤지며 난리를 피우다가 어리둥절하여 돌아가니라. (도전 5편 309장 5~7절) 일본의 조선 침략 시기 일본은 조선 백성을 통제하기 위해 헌병에 이어 순사 제도를 운영했다. 1907년 제3차 한일 협약의 비공식 조항에 따라, 한국의..
조선청년독립단은 아 2천만 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만국의 전에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4천 3백 년의 장구한 역사를 유한 오족은 실로 세계 고민족의 하나이라. 비록 유시호 중국의 정삭을 봉한 사는 유하얏스나 차는 양국왕실의 형식적 외교관계에 불과하얏고 조선은 항상 오족의 조선이고 일차도 통일한 국가를 실하고 이족의 실질적 지배를 수한 사 무하도다. 또 합병 이래 일본 조선통치 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하야 오족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 대한 고대의 비인도적 정책을 습용하여 오족에게 참정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등을 불허하며 심지어 신교의 자유, 지업의 자유까지도 불소히 구속하며 행정, 사법, 경찰 등 제기관이 조선민족의 사권까지도..
조선청년독립단은 아 2천만 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만국의 전에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4천 3백 년의 장구한 역사를 유한 오족은 실로 세계 고민족의 하나이라. 비록 유시호 중국의 정삭을 봉한 사는 유하얏스나 차는 양국왕실의 형식적 외교관계에 불과하얏고 조선은 항상 오족의 조선이고 일차도 통일한 국가를 실하고 이족의 실질적 지배를 수한 사 무하도다. 또 합병 이래 일본 조선통치 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하야 오족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 대한 고대의 비인도적 정책을 습용하여 오족에게 참정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등을 불허하며 심지어 신교의 자유, 지업의 자유까지도 불소히 구속하며 행정, 사법, 경찰 등 제기관이 조선민족의 사권까지도..
3ㆍ1 마중물 2ㆍ8 선언 성지 가보니 2019-01-29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sec&sid1=104&oid=001&aid=0010606767 3.1운동이 일어나기 20여일 전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의 간다(神田)에서는 세계 역사에서 예를 찾기 힘든 '독립선언'이 행해졌다. 식민지시대 피지배국 민중들이 지배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감행한 '2.8독립선언'. 조선에서 일본에 건너온 유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외친 이 조선 독립의 함성은 곧이어 조국에서 펼쳐진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