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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환단고기라는 역사책 말인데요.
그게 진짜인지 위서인지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고 하던데 그걸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과학 분석 같은 건 안 한 건가요?
다들 그 책의 내용만 가지고 진짜인지 위서인지를 두고 말싸움하고 있는 거 같던데.
A. 진서냐 위서냐 하는 논쟁은 그 자체가 무의미한 논쟁입니다.
삼국유사는 학계에서 인정하는 책이지만 환단고기와 마찬가지로 초간본이 발견된 적 없고 조선시대 판본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게다가 삼국유사 왕력편에서만 판본별로 30여군데 오류가 있다고 기사화 된적이 있습니다.
왕력편은 5500여자입니다. 참고로 환단고기는 48000여자 중에 60여군데 조작의심 구절을 찾았다는 주장이 있을뿐입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료에서건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사료의 정확도를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몇 군데 오류가 있다고 전체를 의미 없는 책으로 매도하는것은 올바른 학자의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1980년 발굴된 대진국의 정효공주 묘를 통해 아버지인 문왕의 연호 대흥이 처음 밝혀졌는데 그 기록은 환단고기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60년대 원본을 봤다는 증언자가 있고 49년에 필사했다는 기록이 있고, 79년에 발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단고기가 83년도에 나왔으니 유물을 보고 기록한거 아니냐 그러는데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평생 가난하게 사셨고, 그런 최신 유물현황을 알 정도로 고고학계와 알고 지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는데 그걸 일부러 넣을수있는 상황도 아니죠.
이런 식으로 아무 죄없는 사람을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만들어야만 환단고기는 위서가 됩니다.
혹시 83년도에 환단고기가 발간되었다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도 밝혀주신다면 납득하겠습니다.
환단고기를 위서로 만들어야만 지금의 학계는 밥줄을 놓치지 않게 되는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중에 고구려가 굉장히 강성해서 49년에 장수를 보내 후한의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을 습격하였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후한서를 근거로 삼아 이 기사를 믿지 않습니다. 만약 이 기사가 맞다면 313년까지 평양에 있어야할 한나라의 군현인 낙랑군은 설 곳을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강력한 고구려 때문에 한반도의 평양과 중국 내륙을 잇는 연결로는 끊어지기 때문이죠.
적군의 기록을 바탕으로 아군의 기록을 틀렸다고 주장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학자적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만 하지 않고 연구도 많이 할것입니다.
참고로 일본서기는 환단고기보다 10배 이상 황당무계한 기록이 있는 책입니다. 연대부터 비상식적이구요. 그런데 우리 학계는 일본서기 인용은 관계없고 환단고기 인용에만 목숨 걸고 반대합니다.
상서, 일본서기 고사기, 사마천 사기, 열자, 장자, 노자를 비롯해 공자가 썼다는 십익까지 위서 혐의를 벗어나기 힘든 책들입니다. 원본이 없을뿐더러 이미 위서라고 판명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시대를 기록한 기록이 드물기 때문에 많은 기록중에 진실을 찾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대사를 기록한 사서가 없다고 많은 한탄을 하는 고대사학계에서 그나마 있는 기록마저 부정한다면 남아있는 건 적국의 기록뿐이겠죠. 그런 기록으로 우리 고대사를 비정하니 결론이 비참한 고대사뿐입니다.
저는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그게 진짜인지 위서인지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고 하던데 그걸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과학 분석 같은 건 안 한 건가요?
다들 그 책의 내용만 가지고 진짜인지 위서인지를 두고 말싸움하고 있는 거 같던데.
A. 진서냐 위서냐 하는 논쟁은 그 자체가 무의미한 논쟁입니다.
삼국유사는 학계에서 인정하는 책이지만 환단고기와 마찬가지로 초간본이 발견된 적 없고 조선시대 판본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게다가 삼국유사 왕력편에서만 판본별로 30여군데 오류가 있다고 기사화 된적이 있습니다.
왕력편은 5500여자입니다. 참고로 환단고기는 48000여자 중에 60여군데 조작의심 구절을 찾았다는 주장이 있을뿐입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료에서건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사료의 정확도를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몇 군데 오류가 있다고 전체를 의미 없는 책으로 매도하는것은 올바른 학자의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1980년 발굴된 대진국의 정효공주 묘를 통해 아버지인 문왕의 연호 대흥이 처음 밝혀졌는데 그 기록은 환단고기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60년대 원본을 봤다는 증언자가 있고 49년에 필사했다는 기록이 있고, 79년에 발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단고기가 83년도에 나왔으니 유물을 보고 기록한거 아니냐 그러는데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평생 가난하게 사셨고, 그런 최신 유물현황을 알 정도로 고고학계와 알고 지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는데 그걸 일부러 넣을수있는 상황도 아니죠.
이런 식으로 아무 죄없는 사람을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만들어야만 환단고기는 위서가 됩니다.
혹시 83년도에 환단고기가 발간되었다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도 밝혀주신다면 납득하겠습니다.
환단고기를 위서로 만들어야만 지금의 학계는 밥줄을 놓치지 않게 되는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중에 고구려가 굉장히 강성해서 49년에 장수를 보내 후한의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을 습격하였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후한서를 근거로 삼아 이 기사를 믿지 않습니다. 만약 이 기사가 맞다면 313년까지 평양에 있어야할 한나라의 군현인 낙랑군은 설 곳을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강력한 고구려 때문에 한반도의 평양과 중국 내륙을 잇는 연결로는 끊어지기 때문이죠.
적군의 기록을 바탕으로 아군의 기록을 틀렸다고 주장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학자적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만 하지 않고 연구도 많이 할것입니다.
참고로 일본서기는 환단고기보다 10배 이상 황당무계한 기록이 있는 책입니다. 연대부터 비상식적이구요. 그런데 우리 학계는 일본서기 인용은 관계없고 환단고기 인용에만 목숨 걸고 반대합니다.
상서, 일본서기 고사기, 사마천 사기, 열자, 장자, 노자를 비롯해 공자가 썼다는 십익까지 위서 혐의를 벗어나기 힘든 책들입니다. 원본이 없을뿐더러 이미 위서라고 판명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시대를 기록한 기록이 드물기 때문에 많은 기록중에 진실을 찾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대사를 기록한 사서가 없다고 많은 한탄을 하는 고대사학계에서 그나마 있는 기록마저 부정한다면 남아있는 건 적국의 기록뿐이겠죠. 그런 기록으로 우리 고대사를 비정하니 결론이 비참한 고대사뿐입니다.
저는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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