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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일해야]

그러면 상제님 도업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내 경험으로 말하면,처음 상제님 진리를 들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신앙하며 상제님 일을 해야 한다.나는 신앙을 시작할 때,상제님 일이 우리 집의 가업이라느니 우리 가정의 유일한 유산이라느니 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저 신앙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된 것이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일이면 대입 시험 보러 가는 날인데 잠이 안 온다.

그래 뭐가 없나 하고 찾는데 태사부님의 작은 책상 위에 이상한 책이 하나가 굴러 다닌다.겉장도 없고, 앞의 몇 장이 뜯겨져 나갔다.거기를 보니 “천사 가라사대 바람을 불리시고 비가 오게 하시니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면서 큰비가 오더라.”이런 구절이 있고, 병 고치는 이야기가 있다.그래 내가 ‘아, 옛날에 그런 신선 할아버지가 있었는가 보구나.’했다.그러고 한두 장 읽어 보려고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태사부님이 보시고 “그것 머리 아프니까 지금 보지 말고 나중에 시험보고 오면 얘기해 줄게”하신다.

그 며칠 뒤 태사부님한테서 ‘우리집이 상제님 도를 펴다가 가정도 절단이 나고,서산에서 공부를 거쳐 이곳 대전까지 와 살게 됐다.’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듣는데, 옆에서 어머니가 한 말씀 거드신다.“야, 과거에 우리 상제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세상이 굴러간다. 북쪽에서 인공 쳐내려 오는 것,한강다리 끊어지고 전쟁하는 것 다 그대로더라.”

그 때 그 말씀이 얼마나 신비스러우면서도 사실적으로 내 귀에 쏙 들어오던지!지금까지도 그 때의 감흥이 아주 생생하다.그래 내가 순간적으로 ‘아, 그런 세계도 있나.그렇게 전쟁 일어날 것도 훤히 얘기하고,그 말 그대로 역사가 흘러왔다니.’하고 생각했다.단 몇 초 동안하신 말씀이지만,뭔가 통하는 기운이 있는지 내 귀에 아주 깔끔하게 들어왔다.‘야, 그것 참 재미있는 이야기구나’싶었다.

그러고 그 몇 달 후에 태사부님이 김치 국물 잔뜩 묻은 옛날 책 하나를 빌려다 주셨다.

그렇게 해서 상제님 진리를 접하게 된 것이다.

[포교하면서 책의 필요성을 절감하다]

우리 집안이 상제님 진리사업을 하다 망했다고 하시는 태사부님 말씀을 들으니,일단은 거기에 관심이 쏠리면서 진리공부를 하고 싶었다.하지만 내 지식 갖고 뭘 알 수가 있나.

그래도 포교를 하러 다녀 본다고 나섰다.

여기저기를 다니는데, 아침에 포교하러 나설 때 태사부님이 용돈 겸해서 천 원, 많이 주면 2천 원을 주신다.3천 원 받은 것 별로 생각 안 난다.

그래 완행버스 주차장에 가서 무조건 떠나는 차를 탄다.그 날 그 차 행선지가 포교의 목적지다.그러고는 250원 300원 500원 되는 데서 내려서 그 곳에 있는 마을로 포교하러 다니는 것이다.그렇게 여러 마을을 다니며 굶어도 보고,어디 가서 밥도 얻어 먹어보고,이상한 도인들을 만나 도담을 나누기도 했다.천상 옥황상제님 계신 궁전에 갔더니 거기에 통과하려면 여러 가지 조사를 받고 몇 개의 문을 통과하더라는 여러 가지 조사를 맏고 몇 개의 문을 통과하더라는 노인도 만나고,또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는데 한참 공부가 되려니 호랑이가 달려들더라는 도사도 있었다.이번에 태풍 루사 때문에 피해를 입은 영동이나 김천이 포교가 잘 안 되는 데다.당시 영동 근처 이원에서 복숭아 밭을 크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본래 화가였는데,인생유전으로 농촌에서 과일나무를 가꾸고 있었다.복숭아나무 숲 아래에 상한 복숭아가 굴러다니는데,그곳에서 그와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해 질 무렵 주린 배를 움켜쥐고 뚜벅뚜벅 시골길을 걸어 나오던, 그 때의 정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그런데 그때 너무 포교가 안 되는데다가, 책은커녕 조그만 팜플렛조차 하나 없어 가끔 이렇게 해서 뭘 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또 그 전후에 만난 몇 사람이 책을 써야하지 않겠느냐,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길 한다.

처음에는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절박하게 못 느끼고, ‘일단은 뭔가 풀릴 때까지 세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자.’이렇게만 생각했다.그러고는 영동의 이장집과 그 복숭아 수목원을 하는 사람에게 『대순전경』책을 사다가 빌려 주었다.그런데 한참 후에 책을 찾으러 갔더니,책도 보지 않으면서 김치 국물만 잔뜩 묻히고 책장도 뜯겨져 있다.그걸 찾아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오면서 생각해 보니,너무 한심했다.내 인생이 아깝고 청춘이 불쌍했다.그래 어떻게든 책을 써 봐야겠다 해서 노트에 목차를 써놓고, 다시 그걸 땜질하고, 그렇게 하면서 총 10장으로 된 『증산도의 진리』책의 얼개가 짜여진 것이다.

『증산도의 진리』 책 완성

그걸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게 스물서너 살때다.

그런데 책 좀 쓰려면 종도사님이 ‘일할 사람도 없는데 지금 책 쓴다고 시간을 깨먹으면 어떻게 하느냐’고,‘나가서 포교도 해라’하신다. 그래 며칠 포교하다 보면 또 답답해져서 책을 써야겠다고 몇 줄 쓰고,다시 나가서 포교하고,그러면서 문화방송 옆에다 초기 도장을 세웠다.

그렇게 1,2년 동안 작업을 한 끝에,도기 111년 서기 1981년 봄에 책을 내기로 했다.그런데 그 해 3월에 도모님이 돌아가셨다.그래서 우선 집안을 수습하고 나서 몇 달 후 다시 1페이지부터 새로 정리해 나갔다.그 때는 타자기도 없이 손으로 직접 원고를 썼다.글자가 틀리면 원고지 오려 떼어 풀로 붙이고.도기 110년 초에 2천 장을 썼는데,도모님이 돌아가신 후 몇 달 있다가 다시 써서 거의 2,500장을 마무리지어 인쇄를 걸었다.그렇게 해서 음력으로 경신(도기 110)년 12월,양력으로는 그 다음해 1월 23일, 수요치성 때 책이 나온 것이다.

[제 3변 초기의 진리교육]

상제님 진리를 순수하게 찾는 사람, 진리에 목말라 하며 한평생 깨달음을 추구했으나 헛다리만 짚다가 상제님 진리를 만난 사람들은 아주 강력하다.3년 5년 10년 20년 신앙한 사람들보다 낫다.그런데 그 사람들이 위대한 일꾼으로 성장하느냐 아니면 그냥 별 볼일 없는 일꾼으로 떨어지느냐 하는 것은,처음에 진리교육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집중적으로 감동적으로 잘 받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사실 그 때는 한 번 교육을 했다 하면 밤을 새웠다. 어디 대학가에 가서 강연회에 나면 함께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거기서 더 들을 사람은 장소 정해놓고 가서 밤 열 두 시까지 교육을 했다.열두 시 전까지 자리를 파한 적이 없다.

그러고도 다시 자리를 마련하면 거기 가서 밤새워 얘기하고.

『증산도의 진리』책은 상제님 진리의 체계를 잡는 유일한 교과서로서 『도전』과 음양 짝이 되는 교전敎典이다.그게 마무리지어져서 책으로 나온 게 내 나이 스물여섯 살 때다.

『증산도의 진리』책은,그대들의 사부가 초기에 어떻게 상제님 진리를 보고 틀을 잡았는지, 어떤 심정과 마음으로 신앙했는지,그것을 좀 느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번에 나온 판은 완전 개정판이 아니고, 문자 몇 군데를 읽기 편하게 바꾼 것뿐이다.구성은 초기의 것 그대로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봐도, 상제님 진리의 근본맥을 잡는 데는 진리책 읽는 것보다 더 빠른 길이 없다.

-도기 132년 양력 9월 8일 증산도 대학교 종도사님 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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