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창세사를 다시 쓰게 한 홍산문화(2) 【찬란한 청동기 문명을 꽃피운 고조선 】 기존의 강단 사학계는 한국의 청동기 시대가 기껏해야 BCE 13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국사의 청동기 시대는 그보다 천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민족이 BCE 2500년경에 이미 청동을 사용하였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요서지역의 하가점하층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화는 황하 유역의 BCE 2200년경, 시베리아 지역의 BCE 1700년경보다 이른 시기에 시작된 청동기 문화이다. 내몽골의 적봉시를 중심으로 발해만 일대, 요령성의 의무려산 일대까지 뻗어 있던 하가점하층 문화는 산성山城의 존재와 출토 유물 등으로 볼 때 황하 유역의 중국..
▣인류 창세사를 다시 쓰게 한 홍산문화(1) ◉동북아의 여러 신석기 문화 130년에 걸친 이라크 지역의 유적 발굴을 통해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이 세상에 드러난 것에 필적하는, 20세기 동북아 최대의 발굴 사건이 있다. 요서 지역(발해연안 지역)의 신석기·청동기 문화 발굴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인 에밀 리쌍이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내몽골 적봉 지역에서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한 이래,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발굴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2006년 6월에도 거대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내몽골 적봉시 오한기敖漢旗의 초모산草帽山 유적지에서 5,500년 전 적석총군이 발견되었다(중국 CCTV 보도 내용, 2006.6.10). 요서에서 발견된 가장 오랜 신석기 문화는 8,500년 전까지 거슬..
#미래로가는 바른 역사협의회 (미사협)발대식에서 카이스트교수 초대 벤쳐기업회장 이민화교수님의 역사학의 미래 명강. 역사로 부터 미래를 보아야 한다 (이민화 교수) 저는 벤처기업 협회를 설립하고 수많은 벤처기업들을 이끌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연코 얘기하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는 실패한 역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태어나던해 1953년도 전 세계 가장 못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은 모두가 아는바와 같이 세계 10위권의 국가, 8번째 3050의 후보국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세계 역사상 원조받던 국가가 원조하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시점을 놓고 보면 한강의 기적은 더이상 지속되지 않고 있습니다. ..
#한국사 우리역사를 바로찾고자 일생을 노력하시는 대중역사학의 관문을 열어주신 이덕일 소장님께서 미사협 발대식에서 한 짧고 굵은 명강입니다. ☆결론적으로 역사학은 미래학입니다, .... 그 미래는 과거에서 찾는 겁니다. 우리의 과거의 역사상이 뭡니까? 저 만주 일대 하북성 일대 중국 사료에 보면 한때는 산동 반도 일대까지 장악했던 대륙성의 역사고 일본 열도까지 장악했던 해양성의 역사예요. 바로 이 역사를 다시 되찾자는 것, 다시 이 되찾아가지고 이걸 갖다가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의 도구로 삼자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역사주권은 역사주권인 겁니다. 또 현재 영토주권은 또 현재 영토주권이죠. 단지 우리의 역사가 과거에 그랬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가르쳐야할 역사인거죠. 이덕일 ..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을까(동영상)☜? -한민족 뿌리역사를 도려낸 일본 19세기 중반에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은 세계 제패의 꿈을 키우면서 한국을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식민주의 사관을 확립하였다. 식민주의 사관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과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조작한 역사관관이다. 조선인을 예로부터 다른 나라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온 열등감과 자기 비하에 빠진 민족으로 묘사하여 조선을 영원히 지배하겠다는 것이 일제 식민사관의 요지이다. 이러한 식민사관의 정립과 실현을 위하여 일제는 조선침략을 군사적으로 준비함과 동시에 자국의 쟁쟁한 사학자들을 동원하여 한국사를 연구하게 하였다.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주로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결국 한반도 지배를 위한 학문적 ..
심승(沈承), 제진녀문(祭震女文)의 일부분 『발레리 한센, 신성곤 번역 열린 제국 : 중국 pp. 460-461』 아버지와 딸의 관계 엄밀하게 말하자면, 여성 교휸서의 가르침은 소녀가 결혼할 때까지는 친정집에 속하고, 결혼하면 시댁에 합류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설사 과부가 되거나 아이를 낳지 못해도 그녀는 시댁 식구들과 살아야 했다. 그런 사고 때문에 부모들은 딸들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꺼렸을 것이다. 그러나 몇몇 묘지명을 보면, 일부 아버지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딸을 귀여워 했는지 알 수 있다. 천연두로 두 딸을 잃은 한 아버지는, 큰딸의 어린 시절을 그린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글을 ?다. "……네가 태어났을 때, 사실 나는 기쁘지 않았다. 30세가 넘은 남자는 아들을 원하지 딸을 원하지 않으니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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