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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고대사 #한국사 #▣춘천에서 시작된 일본 천황가(소시모리)

일본의 역사 또한 중국 역사 못지않게 고조선과 밀착되어 있다. 고대 일본사는 동방 한민족의 이민개척사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정통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에 기록된 건국사화에서도 일본 역사는 동방 한민족이 개창한 역사임이 드러나고 있다. 천손강림의 일본 건국사화가 환웅의 배달 건국사화와 그 틀이 똑같은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BCE 660년에 즉위한 초대 왕 진무神武의 정체 또한 일본 고대사는 고조선이 개창한 역사임을 밝혀 준다. 3세 가륵단군 때(BCE 2173) 두지주豆只州의 예읍濊邑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그곳 추장 소시모리素尸毛犁를 처형하였다. 이 소시모리의 후손으로 36세 매륵단군 때의 인물인 협야후陜野侯 배반명裴幋命이 일본으로 건너가(BCE 667) 그곳을 정복하고 스스로 천왕이라 칭하였는데, 이 배반명이 곧 일본의 초대 왕 진무神武이다.추장 소시모리는 『일본서기』에서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지명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국조신 아마테라스의 아우인 스사노素盞鳴가 과도한 야심을 품고 난동을 피우자 주민들이 단결하여 그를 그의 본국인 신라(당시에는 고조선이었다)로 쫓아냈다. 『일본서기』는 스사노가 이때 ‘신라국에 내려와 소시모리라는 곳에 살았다[降到於新羅國. 居曾尸茂梨之處]’고 전한다.또한“협야라 하는 것은 어렸을 때의 이름이다. 뒤에 천하를 평정하고 8주를 다스렸다[所稱狹野者, 是年少時之號也. 後撥平天下, 奄有八洲]”는 진무 왕에 대한 『일본서기』의 기록에서도 협야존 배반명과 진무왕이 동일인이었을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비록 한자 표기는 다르지만 배반명은 협야狹野 지역의 제후였고, 진무는 소년 시절에 협야狹野라 불리었다.『일본서기』는 진무가 큐슈 섬 일향日向에서 출발하여 일본 열도를 평정하고 BCE 660년에 천왕으로 등극하였다고 말한다. 진무의 천왕 즉위 사건과 겨우 7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배반명의 천왕 참칭 사건, 이 두 가지는 동일한 사건인 것이다.

일본측에서는 이런 해석을 하고 있다.일본을 건국한 아마테리스 오이카미(일본의 시조)의 동생 스사노 오노미코도가 소시모리에 건너갔다가 다시 출운국으로 귀한 하였다 라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행촌 이암선생이 남긴 단군세기에 제3세 가륵단군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戊申十年(무신십년): 무신 10년 즉 BC 2173년에
豆只州濊邑叛(두지주예읍반): 두지주의 예읍(濊邑)이 반란을 일으키니
命余守己(명여수기): 여수기(余守己)에게 명하여
斬其酋素尸毛犁(참기추소시모리): 그 추장 소시모리(素尸毛犁)를 베게 하였다.
自是稱其地曰 素尸毛犁(자시칭기지왈 소시모리): 이때부터 그 땅을 일러서 소시모리 라고 하다가
今轉音爲牛首國也(금전음위우수국야): 지금은 음이 바뀌어 소머리 나라 즉 우수국(牛首國)이 되었다.
其後孫有陜野奴者(기후손유협야노자): 그 후손에 협야노(陜野奴) 라 하는 자가 있었는데
逃於海上據三島(도어해상거삼도): 바다를 건너가 삼도(三島)를 점거하고
僭稱天王(참칭천왕):  스스로 천왕이라고 칭했다. 

배반명은 단군의 명을 받고 일본을 평정하고 돌아오지 않고 스스로 천왕이라고 칭하고 자기신분을 천자인 단군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이는 천자인 단군에 대한 명백한 반역사건이라 봐야한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마한세가 하」의 기록을 보자

3세 가륵단군 때(BCE 2173) 두지주豆只州의 예읍濊邑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그곳 추장 소시모리素尸毛犁를 처형하였다. 이 소시모리의 후손으로 36세 매륵단군 때의 인물인 협야후陜野侯 배반명裴幋命이 일본으로 건너가(BCE 667) 그곳을 정복하고 스스로 천왕이라 칭하였는데, 이 배반명이 곧 일본의 초대 왕 진무神武이다.



◉다음은 36세 매륵단군조를 보자.
甲寅三十八年(갑인삼십팔년): 갑인 38년 즉 BC 667년에 매륵단군께서
遣陜野侯裵幋命(견협야후배반명): 협야후 배반명을 보내어
往討海上(왕토해상): 해상의 도적을 토벌케 하셨다.
十二月三島悉平(십이월삼도실평): 12월에는 일본의 삼도(일본을 구성하는 세섬,큐슈,혼슈,시코쿠)를 모두 평정하였다.

◉춘천 우두산 정상의 ★소슬묘:소시모리 묘다.
풍수학상으로 명당으로 보기는 어려울듯 하다.외롭게 높이 서있고 좌청룡,우백호가 약하고 장풍이 되지 않아 바람이 심하다.일본인의 미래 운명이 험난해보인다. 일본인들이 배용준의 겨울연가 시청후 춘천에 오면  분향을 하곤 했다고 전한다.일설에서는 주원장의 조상묘라는 설도 있으나 문헌적 근거가 희박하다.소시모리 라는 곳은 한국어로 우두산 소슬묘가 됩니다. 즉 아마테리스의 조상이 소슬묘라는 말이다. 일본의 시조인 아마테리스가 한반도 출생 이였다는 학계의 가설을 뒷받침 해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제 강점시기에 일본총리 고이쇼는 소슬묘를 신성하게 여겨 신궁까지 세우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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