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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의 도조道祖 강증산姜甑山 상제님은 신미辛未(1871)년 음력 9월 19일,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곧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井邑市 德川面 新月里에서 탄강하셨다. 부친은 존휘尊諱가 문文 자 회會 자요, 자字가 흥興 자 주周 자이며, 모친은 성이 권權씨요 존휘는 양良자 덕德 자였다.


●경오庚午(道紀前 1870)년 9월에 성모께서 근친覲親하러 홀로 서산리에 가 계실 때 … 하루는 밭에 나가셨다가 오한을 느껴 집으로 돌아와 소나기가 내린 뒤 깊이 잠드셨는데 꿈에 홀연히 검은 구름이 가득한 가운데 뇌성이 진동하고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성모의 앞 으로 내려오거늘 유심히 보니 마치 호박琥珀과 같은 것이 황금색의 신비  한 광채를 발하는지라. 성모께서 품에 안으시매 순간 온 세상이 광명하  여지더라. 이로부터 성령을 잉태하여 열석 달 만에 상제님을 낳으시니,  이 때 성모 권씨의 존령尊齡 22세이시더라(『道典 1:16)

열석(13) 달 만에 태어나신 것은,상제님이 천상 백보좌의 가을 기운인 서방 4•9금金 기운을 주재하시는 분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또한,수운에게 내려주신 시천주侍天主 주문, 곧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의 열석 자 기운에 응해서 오셨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대우주의 지존자 하나님이신 상제님은 전라도 고부 손 바래기 마을[客望里]에서 탄강하셨다. 인류를 구원하실 하늘의 주主를 기다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손바래기 동네의 주산主山은 방장산 상제봉上帝峰과 시루산[甑山]이다.

 상제님은 이 시루산에서 공부하실 때 그 이름을 취하시어 스스로 호를 ‘증산甑山’이라 하셨다. 상제님은 성이 진주 강姜씨요,존휘尊諱가 ‘한 일一’ 자 ‘순박할 순淳’ 자이다.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증산 상제님의 존호와 성씨,존휘尊諱에는 인류 구원의 도비道秘가 암시되어 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어용御容이 금산 미륵불金山彌勒佛과 흡사하시어 용안龍顔이 백옥처럼 희고 두루 원만하시며 양미간에 불표佛表의 큰 점이 있고 천안天眼은 샛별과 같이 반짝이시니라. 또 목소리는 인경처럼  맑고 크시며 왼손바닥에 ‘북방 임壬’ 자와 오른손바닥에 ‘별 무戊’ 자 무늬가 있고 등에는 붉은 점으로 뚜렷하게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으며 발바닥에는 열세 개의 점이 선명하니라. … 또 아랫입술 안에 바둑돌만 한 붉은 점이 있는데 하루는 성도들에게 보여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금산 미륵은 붉은 여의주如意珠를 손에 들었으나 나는 입에 물었노라.” 하시니라. 증산상제님께서는 정대하시고,자애가 충만하시고,호탕하시고, 과 감하시고, 소탈하시고,웅장하시며 항상 격에 구애받지 않고 진실하시니라 .(『道典』 3:320, 3:321)

상제님의 유소시절과 청년 시절에 대해서는 특기할 내용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여섯 살 되시던 해에 부친께서 태인泰仁 장군리將軍理에 사는 황준재黄俊哉 (1842〜1906)라는 이름 있는 훈장을 청하여 천자문을 가르치셨다 .

그때 상제님이 스스로 천자문을 펼치시어 ‘하늘 천’자 와 ‘땅 지’자를 집안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읽으시고 책을 덮고 나가신 뒤 그 후로는 읽지 않으신 일이 있었다.

그 까닭을 묻는 훈장에게 "하늘 천天 자에 하늘 이 치를 알았고  땅 지地 자에 땅 이치를 알았으면 되었지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시며 천지를 가르는 혜명을 보여 주셨다(『道典』1:19)

천지를 알았으면 되었지 더 배울 것이 어디 있느냐! 사람은 하늘 땅에서 태어나 살다가 다시 하늘땅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하늘과 땅을 깊이 깨치는데 진정한 삶의 의미가 있다. 하늘 땅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인간이 천지의 주인’으로서 제 노릇을 하느냐 못하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소중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일곱 살 때 어느 글방에 가서 훈장에게서 ‘놀랄 경驚’자 운韻을 받고 지으신 시를 통해서도,천지와 하나 되어 삼계를 호령하시는 상제님의 웅혼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원보공지탁遠步恐地坼이요 대호공천경大呼恐天驚이라.
 멀리 뛰려 하니 땅이 꺼질까 두렵고 크게 소리치려 하니 하늘이 놀랄 까 두렵구나.(『道典』1:20)

이 땅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오신 상제님은 인생의 길을 걸으며 14〜15세 때에는 기울어 가는 가세 때문에 글공부를 중단하고 사방으로 외유하시면서 농사일을 하셨고, 남의 집 머슴 노릇도 하셨다. 새 하늘을 개벽한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세태를 둘러 보시기위해, 고통 받는 민초의 바닥 생활을 몸소 체험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강세하신 목적을 이루시도록 결단을 내리게 한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24세 때인 갑오(1894)년에 상제님  고향 땅 고부에서 발원한 동학혁명이다.

 동학혁명에는 농민 전쟁의 요소와 종교적인 요소가 동시에 깔려 있었다. 상제님이 성령으로 천명을 내리셔서 동학을 창도하게 하셨던 최제우 대신사가 세상을 떠나고 약 30년이 지난 1894[甲午]년에,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분노한 농민들이 부패하고 묵은 제도를 개혁하고자 뭉쳐 일어났다.

농민들은 동학에서 노래하는 새 세상이 하루빨리 열리기를 고대하며 혁명을 일으켰 던 것이다. 농민들은 죽창을 들고 ‘시천주’노래를 부르며 관군과 맞서 싸웠다. 처음에는 관군을 물리치고 승리했지만 이후 동학혁명을 핑계로 조선을 침탈하러 온 일본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상제님은 몰살의 큰 위기에 빠진 동학군의 운명을 내다보시고 곧장 공주에 있는 전명숙 장군의 진영을 찾아가 “무고한 백성들만 죽이고 절대 성공을 못 하니 당장 전 쟁을 그만두시오”라고 강력하게 권유하셨다.

그러나 전명숙장군은 외세를 몰아내고 탐관오리를 물리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일념뿐인지라 상제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결국 농민군은 공주 전투 이후 패배를 거듭 하였고 최남단 해안과 섬 지역으로 내몰려 몰살을 당했다.  상제님은 동학혁명의 참상을 목격하시고,패망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조선의 현실과 지구촌의 대세를 꿰뚫어 보셨다.

그리하여 지난날의 성 자들의 가르침이나 깨달음으로는 세상을 건질 수 없음을 아시고 몸소 세상을 널리 구하실 [광구천하匡救天下] 것을 분연히 선언하셨다. 범상한 인간의 삶을 과감히 떨치고 새 문화를 여시는 우주의 통치자로서 인간 역사의 중심에 뛰어드신 것이다. 상제님은 27세 때 유불선과 음양 참위 讖緯 같은 지난날 문명사에 등장했던 주요 서적을 모두 탐독하셨다.
이어 3년 동안 천하를 유력하시며 세상의 대세와 민심을 살피시고 천하를 건질 법방을 구상하셨다. 고향을 떠나신 상제님은 곧장 익산과 강경을 거쳐 연산에 이르러 『정역正易』을 완성한 김일부金一夫를 만나셨다.

당시 상제님의 성수聖壽는 27세였고 일부는 72세였는데,일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1897년 )이었다. 상제님이 김일부 대성사를 만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충청도 강경을 지나 연산連山에 이르러 향적산香積山 국사봉國師峯에  있는 김일부를 찾으시니라. 지난밤 일부의 꿈에 하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 ‘옥경玉京에 올라오라.’는 명을 전하거늘 일부가 천사를 따라 올라가  ‘요운전曜雲殿’이라는 편액이 걸린 장려한 금궐에 들어가 상제님을 뵙고  내려왔는데 이제 맞이한 증산을 뵈니 간밤 꿈에 뵌 상제님과 그 형모가  같은지라.

그 일을 아뢴 뒤에 ‘요운曜雲’이란 도호를 드리며 심히 경대하되 증산께서는 그 호를 받지 않으시니라. 증산께서 그곳에 머무르시며  영가무도의 교법을 관찰하시고 일부와 후천개벽의 천지대세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니라. (『道典』1:68)『이것이 개벽이사 상』-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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