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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기타

숭례문과 정도전의 예언

인천도령 2016. 12. 14. 23:25
숭례문과 정도전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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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남대문(숭례문) 전소와 국운 예언

『“숭례문이 전소되거든 도읍과 국가 전체에 운이 다한 것이니 멀리 피난을 가야한다”』
 
정도전이 숭례문을 만들 당시 태조 이성계에게 예언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내가 만든 숭례문이 훗날 불타 소실될 날이 올것이니
이 징조는 한양이 그 운을 다하고 수명이 다한 것이며 국운도 쇠퇴할 것이다. 그때는 멀리 피난을 가야 한다"라는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남대문이 우리나라 국보 1호가 된 때는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1934년, 조선 총독부는 ‘조선 보물 고적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을 만들고 조선의 역사적 유물들을 조사합니다
이에 따라서 보물 1호로 숭례문을, 보물 2호로 흥인지문을, 보물 3호에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보물 4호로 보신각종을 지정하게 됩니다.
일본이 숭례문을 보물 1호로 명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은 가등청정이 한양으로 입성해 오면서 제일 먼저 통과한 전승 문이  ‘숭례문’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방이후 1962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우리 정부는 조선총독부의 문화재 지정을 참고해서 숭례문(남대문)을 국보 1호, 원각사지십층석탑을 국보 2호로 지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숭례문의 국보1호가 된 배경입니다. 어쩌면 이런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느라 전소사건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 선조 25년 1592년 4월 숭례문에서 작은 화재가 있었는데 화재 발생 보름 후 임진왜란이 발생.
◑1910년 숭례문의 현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몇일 후 대한제국은 일본에게 강제 합병을 당해 36년간 일제치하에 살았다.
◑ 1950년 숭례문 성곽 일부 붕괴 사고가 있었는데 몇일 후 6.25 전쟁이 발발했다.
◑ 2008년 숭례문 전소 사건이 있었는데 보름 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는데 미국 쇠고기 촛불집회로 이명박 정권의 위기와  민주주의 위기가 찾아왔다.
◑ 현재 전세계 미소중일 지도자들은 보수우파 강경론자들이 득세를 하며 우경화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오서위기 미소중일의 군사패권이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은 남대문과 조선국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합니다.
 조선말 신인神人 강증산의 천지공사 내용을 살펴본다.

▣강증산의 조선 국운 수습과 천하대운 공사
 (병오년) 2월에 대공사를 행하시려고 서울로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전함을 순창(淳昌)으로 돌려 대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켜 모든 일에 소홀히 임하지 말라.” 하시고
 
또 여러 성도들에게 명하시기를 “이 일은 천하의 대운(大運)을 정하는 일이니 깨끗한 종이에 각기 소원을 기록하라.” 하시어 그 종이로 안경을 싸 넣으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는 정남기, 정성백, 김갑칠, 김광찬, 김병선 등을 데리고 군산으로 가서 배를 타기로 하시고
신원일과 김선경, 김보경, 김봉규와 그 외 한 사람에게 “태전(太田)으로 가서 기차를 타라.” 하고 명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조선의 국운을 바로잡으려 하나니 이는 수륙병진(水陸幷進)이니라.” 하시니라.
 다시 원일에게 명하시기를 “너는 먼저 서울에 들어가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 써서 남대문에 붙이라.” 하시니
 
원일이 명을 받아 일행을 거느리고 태전으로 떠나니라.(道典 5:121장)
 
 ▶1906(丙午)년 공사 내용인데  순창 회문산은 오선위기혈이 있는 대명당지지로 세계 정치 구도가 이 혈의 발복으로 흘러갑니다. 세계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소중일이 바둑을 두는 형국으로 패권이 흘러감을 상징한다. 세계패권의 결론은 세계 시비를 끌러낼 수 있는 정치군사의 요지인 한반도의 통일과 주인이 결정되는 것인데  오선위기의 주인은 당연히 한국이다. 원래 동서문명의 시원인 환단시절의  광명문명의 주역이었던 한민족! 아직도 역사주권이 회복되지 못하고 식민사학에 찌들어 자기비하역사를 가르치는 한국입니다. 아직은 머슴인 미소중일이 주권을 쥐고 대세를 끌고 가는 정치판세로  주권회복이 안된 상황을 의미하지만  주역(周易)에서는  도주국(道主國) 로서 세계정치의  대통일을 이루는 한민족의 미래를  成言乎艮(성언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구촌 창세문화역사의 종주인 동북아 간방인 한국에서 최종적으로 인류의 꿈인 지구촌통일 문명이 열린다는 뜻이다. 이 내용은 조선국운을 거두면서 동시에 주권회복을 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공사 중 하나다. 이 공사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수도가 옮겨지는 공사의 일환이자 새로운 수도이전과  통일한국의 지도자 출세와 관계있는 공사다. 따라서 정도전이 예언한 바와 같이  서울 남대문  전소가 의미하는 바는 서울의 운수가 다하면서 서울중심의 부패기득권세력이 청산되고 새 역사 건설을 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천자는 지도자를 상징하므로 서울의 지도자 운수가 다한다는 것은 국가 통치자의 역량의 한계에 온 것을 의미한다. 이제 청와대의 운수도 다한 듯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한국정치사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서울은 주변이 악산으로 둘러싸여 사건 사고가 많이 나는 곳으로 태평성세를 구가하기에는 풍수학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대문(숭례문)은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남대문이 전소(全燒)되었다는 것은 결국 서울의 발복이 다한 것임을 의미한다. 청계천 명당수가 역수로 올라 한나라의 수도를 형성하였으나 그 운수는 그리 길지 않다. 경복궁의 조안산인 관악산은 서울의 발복을 의미하며 관악산아래는 서울대가 있다. 따라서 서울의 발복은 서울대 인맥의 발복을 의미한다. 관악산의 좌청룡은 강한 권력지향적 지세를 띠고 있다. 서울의 운세도 석양이 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뒤쪽에 자리한 북악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목성탐랑(木星貪狼)에 속하며 권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광화문에서 바라보면 북악산이 동쪽으로 보고 있어(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청와대를 등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산세 또한 좌우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아 독선적으로 흐를 경향이 큰 지세다. 또한 참살을 상징하는 바위가 보이는 것도 좋지 않다. 북악산은 배주형(背主形)지세로  주인을 등지는 지세를 하고 있다.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청와대 주인으로 들어선 대통령치고 뒤끝이 좋았던 인물이 없었던 듯하다 이러한 풍수학적 지기는 청와대의 주인의 심성에 영향을 주어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게  되거나, 독불장군 혹은 고집불통인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자연환경으로 봤을 때 청와대는 살(煞)을 피하기 어렵다. 청와대 주인은  들어갈 때는 인망을 얻고 들어가도 나올 때는 국민들의 덕망, 신뢰 등을 얻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삶을  살아왔다. 이제 서울의 운세도 지기가 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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