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관법-신관과수행관

[펌] 천연두로 두 딸을 잃은 한 명나라 아버지의 담담한 제문

인천도령 2016. 7. 27. 13:51



심승(沈承), 제진녀문(祭震女文)의 일부분 『발레리 한센, 신성곤 번역 열린 제국 : 중국 pp. 460-461』


 아버지와 딸의 관계


 엄밀하게 말하자면, 여성 교휸서의 가르침은 소녀가 결혼할 때까지는 친정집에 속하고, 결혼하면 시댁에 합류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설사 과부가 되거나 아이를 낳지 못해도 그녀는 시댁 식구들과 살아야 했다. 그런 사고 때문에 부모들은 딸들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꺼렸을 것이다. 그러나 몇몇 묘지명을 보면, 일부 아버지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딸을 귀여워 했는지 알 수 있다. 천연두로 두 딸을 잃은 한 아버지는, 큰딸의 어린 시절을 그린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글을 ?다.




 "……네가 태어났을 때, 사실 나는 기쁘지 않았다. 30세가 넘은 남자는 아들을 원하지 딸을 원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채 첫돌이 되기도 전에 너는 나를 사로 잡았지. 내가 너를 쳐다볼 때마다 킥킥대며 응답할 때도……


 너는 자주 방문을 두드리곤, 재빨리 안으로 들어아 물었지. "거기, 누구세요?" 하고 말이다……


 너는 가끔 나와 수수께끼를 하여 이긴 사람이 집 주위를 돌며, 진 사람을 따라잡는 놀이를 했지. 네가 마지막으로 나를 따라잡았을 때, 환호하며 박수를 쳐댔었지.


 그런데, 채 반 달도 지나지 않아 네가 죽었다면, 도대체 누가 믿을 수 있겠니……"




 아진(阿震)은 발랄한 아이였다. 아버지는 그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했고, 그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두고 아내와 견해차가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너의 어머니는 너무 엄격하단다. 네 습관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될까봐, 두려워하여 가끔 너를 혼냈었지.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기에, 네가 없을 때면 네 어머니에게 이야기 하곤 했단다. '아직 어린아이라서 잘잘못을 알 수 없지 않소. 좀 더클 때까지 그대로 둡시다.' "





 어머니가 그녀의 버릇을 고치려고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지 간에, 이 발랄한 어린 아이가 성장하여 여성 교훈서에 묘사된 순종적인 여성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부친은 다음과 같이 딸의 저승 여정을 묘사함으로써 추도사를 마친다. 





 "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사이다…… 너보다 열흘 앞서 두 살 어린 동생 아손(阿巽)이 너와 함꼐 몸져누웠다가, 사흘 뒤 아손이 죽고 너 또한 떠나버렸구나……


 이제 더 이상 너와 놀아줄 상대도 없지만, 적어도 너도 잘 아는 동생과 함께 가는구나.


 너는 걸을 수 있겠지만, 네 동생은 이제 겨우 불안하게 발걸음을 ?는 상태란다.

                           ♣
              어디를 가건,
        손으로 네 동생을 꼭 붙잡고 가렴……


 나는 항상 네 생각을 한다. 내가 얼마나 너를 그리워하는지 안다면, 꼼속에서나마 자주 돌아오거라. 


 만일 인연이 허락해준다면, 나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거라. 그런 바람에서 경전과 주술서와 금강경의 사본을 보낸다……


 저승의 염라대왕을 보면, 무릎을 ?고 손을 들어올려 자비를 구하거라……


 염라대왕에게 말만 하고 울거나 시끄럽게 굴어선 안된다. 너는 저승이 집과 다르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단다."


 


 
 처음 이 글을 보고 참…… 뭐라고 하기 힘든 감정이 들더군요. 특히 같이 죽은 동생의 손을 꼭 잡아주라는 부분이나, 염라대왕 앞에서 울지 말고 조심히 손 들라고 충고하는 부분이나……


 부모 마음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나 비슷한것 같습니다.